August 31, 2022
"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디로 가고 싶어요?"
"타임머신 같은 헛소리 집어치우고 후회되는 게 있냐고 묻고 싶으면 그냥 후회에 관해 물어봐요"
월터가 사람들이 타임머신 시간여행 핑계를 대며 과거로 돌아가 바꾸고 싶은 일들에 대해 얘기하는건 사실 과거에 대한 후회를 말하고 싶은거라고 했는데
마지막 회상으로 타임머신 책을 들고 있는 척을 떠올리는 지미를 보며 지미가 별 내색은 안했지만 사실 척이 자신한테 한 그 수많은 비수가 되는 말들을 후회하고 못돼먹은 일들을 미안하게 생각해주길 바란다고 안타깝게 생각한다면 마지막회라고 내가 너무 감성적이 된 걸까?
Better Call Saul이 끝났다 이는 무려 15년에 걸친 Breaking Bad - Better Call Saul 세계가 막을 내렸다는 뜻이고 감성적이 안 될래야 안 될 수가 없을 것 같은데?
Better Call Saul은 애초에 프리퀄 스핀오프작이고 그러므로 등장인물들의 운명이 이미 Breaking Bad에서 결정되어 있었으니 스토리상의 반전을 기대하는 작품은 아니었다
삼류 변호사로 하루하루 초라하게 살아가는 본인의 현실에 낙담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생각하는 최선을 다하며 아등바등 살아가는 지미가 왜 사울이 되었고 어떻게 브배의 사울이 되었나 바로 Saul Goodman 과거에 대한 것이었다 브배에서는 (프리퀄을 노리고 언급된건 아니었지만)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캐릭터들의 등장과 함께 베콜사 방영 전부터 들었던 궁금증 + 드라마가 진행됨과 동시에 새로 생기는 많은 의문점에 답을 유추해보는 드라마였고 시즌 전체에 걸쳐 가장 큰 질문은 역시
브배에서는 일절 언급도 없었던 킴 웩슬러의 행방이었다
드라마 전체 리뷰를 할 생각은 없고 결말에 대해서만 얘기하고 싶은데 결론만 말하자면.. 깔끔하게 잘 끝낸 것 같다
재판 처음엔 사울 굿맨으로 법정에 섰지만 모든 것을 자백한 후 자신을 제임스 맥길로 칭하는 부분에서 월터가 스카일러에게 가족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마약을 제조한 것이라고 마침내 진실을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자신의 죄를 인정한 것은 사기의 상징 사울 굿맨의 정체성을 버리고 지미 맥길로 돌아가 본인의 죗값을 치르겠다는 뜻이고 이에 신들린 말빨로 형량 7년으로 협상한 것을 내던지고 대신 86년형을 선고받는다 이러한 지미의 마지막 모습은 브레이킹 배드 세계관을 관통하는 주제-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른다-와도 맞아떨어진다
마지막회 제목 saul gone에 대한 의견-사울이 죽는지 사라지는지-이 분분했는데 saul goodman = it's all good man의 언어유희이듯 saul gone = it's all gone도 마찬가지로 말장난 즉 사울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잃었음을 뜻하기도 하고 또한 사울이 아닌 지미로 남은 생을 살기로 했으니 결국 saul gone 영문장 해석 그대로 사울 굿맨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다
지미는 반성의 기미도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가까스로 보여주었고 진 태커빅과 사울 굿맨으로 살았던 과거로부터 평생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저지른 악행에 극 중 주요 인물들 중 유일하게 대면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언젠가는 본인을 마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자신을 언제나 지미로 봐줬던 한 사람 킴이 이제는 언제인지도 아련한 그 예전 주차장에서처럼 곁에 남아 있으니 킴과의 사이도 서서히 회복되는 것처럼 보이고 아예 전부를 잃지는 않은 셈이다
면회 온 킴과의 맞담배 씬에서 시즌1 첫 화 담배씬이 오버랩됐다
두 사람의 삶은 그때처럼 결코 돌아갈 수 없겠지만 흑백 화면에서 담배의 불씨만은 컬러로 비치는 걸 보니 아직 작은 희망의 불씨-킴-가 남아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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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냄새 질색하는 비흡연자 나조차 한 대 피우게 싶게 만드는 킴
월터의 죽음과 동시에 베이비 블루가 흘러나오던 브레이킹 배드의 후련하고 임팩트 있는 엔딩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이고 전체적으로 건조한 베터 콜 사울의 감정선에 걸맞은 마무리였던것같다 ㅎㅏ 안그래도 브배 시리즈 전체의 마지막회라 싱숭생숭한데 흑백으로 끝나니까 더 외롭고 쓸쓸해진다
비포시리즈 3부작 무간도 3부작 토이 스토리 3부작이 내가 아끼는 trilogy 영화들이고 드라마는 전체 완결까지 끝까지 다 본 게 뭐가 있나 싶다 그만큼 시즌제 드라마는 갈수록 실망으로 바뀌는 경우가 대다수이고 전 시즌에 걸쳐 높은 완성도를 유지하고 꾸준히 호평을 받는건 거의 미션 임파서블에 가까운데 브배콜사는 정말이지 대단한 일을 해냈다
브레이킹 배드 프리퀄을 제작하랬더니 브배 후광 없더라도 그 자체로도 훌륭한 베터 콜 사울을 만든 것에 한 술 더 떠 브배를 앞뒤로 끼고 시즌6 파트2부터는 엘 카미노 시점과 맞물리고 자연스레 시퀄까지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감탄만 나온다 중간에 생각보다 저조한 인기 때문에 위기도 있었지만 타협 않고 베콜사 스타일 유지하면서 끝내주게 마무리한거 팬으로서 감사하다
또 말하고 싶은거 있다
으레 대부분의 스핀오프들이 그렇듯이 본편 주인공 본편 인기에 숟가락 좀 얹어보고픈 마음이 너무나도 들었을텐데 베콜사 마지막 시즌에 이르러서야 그것도 후반부에 의미없는 팬서비스 아닌 내용에 필요한 회상으로 출연시켰으니 인내심 대단하고 똑똑하고 베터 콜 사울 뚝심 멋있다
아 그리고 전혀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또 하나 제작진이 천재같다고 느낀 부분
난 3류 감성 베콜사 인트로와 음악을 참 좋아하는데 이게 시즌별로 인트로가 다르다 눈에 확 띌만큼 다른건 아니지만 눈썰미 좋은 사람이라면 금세 차이점을 알아챌 수 있다 시즌별로 테이프가 씹히는 것이 차츰 심해지고 시즌 6에 이르러서는 화면이 아예 오래된 비디오처럼 점점 깨지고 왜곡된다
그리고 마지막 시즌 마지막회로 갈수록 오프닝 음악도 점점 잘라내고 결국 음악이 끝나기도 전에 비디오 재생이 멈추고 화면 전환되어 녹화가 시작되는데 뭔가 의미가 있을텐데 그것까진 잘 모르겠다 ㅋㅋ
다른 사람들은 미처 생각못할 이런 소소한 부분까지 신경을 쓰는거에 제작진이 얼마나 작품에 애정을 갖고 있는지 느껴지고 팬들은 이런 의외의 발견의 기쁨을 누리는것 때문에 처음부터 다시 보고 또 보고 하는것같다
여튼 드라마 전반에 걸쳐 디테일들이 기발하고 사랑스럽고 지니어스함
브레이킹 배드를 베터 콜 사울 시즌2까지 나왔을 때 시작해서 생각보다 그렇게 오랫동안 브배콜사 시리즈에 빠져 있었던건 아니지만
앞으로 살면서 이런 드라마 다신 못 볼 것 같다
드라마 블랙 코미디 서스펜스 장르를 넘나드는 시리즈물 중 imdb 역대 평점 1위 Breaking Bad - 한치 앞도 모르겠는 전개에 끊임없이 빠져들고 끝으로 달릴수록 이렇게 아드레날린이 솟을 수가 없음 시즌1의 그 소심한 선생님이 시즌5의 그 에고 강한 마약왕이 된다구?
몇 년 뒤 큰 여운을 준 단편 영화 El Camino - 제시가 확 늙어버려서 몰입이 좀 안됐지만 ㅠ 알래스카에서 잘 살고 있기를
프리퀄이었지만 본편의 이름값에 구애받지 않고 해치지 않으면서 자기만의 브랜드를 탄생시킨 Better Call Saul - 양복을 입은 엘리트들과 마약 때문에 살인을 일삼는 카르텔이 번갈아 나와서 이거 지금 같은 드라마를 보고 있는거 맞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 중심엔 지미 혹은 사울이 있다 지미 척, 지미 킴, 지미 마이크, 지미 나초, 마이크 나초, 마이크 거스, 거스 카르텔, 거스 랄로, 사울 나초, 사울 랄로 서로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많아 취향따라 골라보는 재미
Albuquerque, New Mexico 심지어 배경도 완벽하다..
브레이킹 배드가 호불호 갈리는 드라마라 모 아니면 도인데 나는 1회부터 넘나 재밌게 봤고 시즌5까지 달리는 내내 96.2% 내 취향이었다 매일매일이 신세계 ㅋㅋㅋㅋㅋㅋ
엘 카미노도 난 딱히 아쉬운거 없었고 호흡이 느린 베터 콜 사울에서 솔직히 시즌별로 고비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버릴 부분은 없었던 것 같다 한 편씩 볼때마다 줄어드는 편수가 아깝게 느껴졌으니 말 다 했지 다 좋았다
뭘 본들 마음에 차리 뭘 봐도 시큰둥해져서 다시 브레이킹 배드 6차 정주행할듯
다음 시즌을 즐겁게 기다리던 시절도 안녕 베콜사만 끝난게 아니라 이제는 정말 브레이킹 배드 시리즈 전체를 떠나보내야 한다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ㅇㅏ 브배콜사 없는 내 인생은 재미없을거다 안 그래도 인생 노잼인데 얼마 없는 내 삶의 즐거움 하나가 사라지니 쓸쓸하기 그지없다 앞으로 이만큼 애정을 줄 창작물이 있을까 싶고 아쉬운 마음이 들다가도 시리즈 끝 마무리를 너무 잘해서 다행이고 뭐 복합적인 심정
빈스 길리건 감독님 베콜사 뒤이야기도 영화로 만들어주세요 지미 감방 이야기 엘 카미노처럼 한 편 뽑을 수 있자나요
통화 한 번 하고 폴더폰 두 동강 내던 낭만 넘치던 시절 그리울거야 (요즘 애들: 뭐 폰을 반으로 쪼갠다고?)
au revoir
auf wiedersehen
hasta luego
bye bye